올해 4월부터 11월까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코드캠프 멘토 생활이 끝났다.
퇴사 면담을 하고, 진행중이던 강의 촬영을 마무리하고, 하던 업무를 인수인계 하느라 한달이 정말 바쁘게 지나갔더랬다.
코드캠프에서 보낸 8개월은 나에게 참 많은 배움과 교훈을 안겨줬다. 후련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2022년을 회고하며 부트캠프 멘토로 근무한다는 것이 어떠한 일인지, 나는 왜 그 일을 시작했고 그 경험을 통해 무엇을 얻었는지 한번 정리하고 내 삶의 다음 챕터로 넘어가보려 한다.
"Why?"에 대한 이야기
Q. 왜 멘토 일을 시작했는가?
개발자 커리어를 본격 개발 직무가 아닌 개발 관련 교육 직무로 시작한다는 것은 다소 특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직 면접을 보러 다니며 이게 상당히 신기한(?) 일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취업을 하던 당시에도 이러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발 커리어를 교육업 내지 지식 공유업으로 시작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돌이켜봤다.
1. 수료 후 공백 없이 바로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
가식 없이 말하자면, 이게 가장 큰 이유였다. 나는 작년 9월에 다니던 회사를 퇴사한 후 프론트엔드 개발을 공부하며 반년 가까이 무수입 상태를 유지하는 중이었다. 소중하게 모아두었던 깜찍한 퇴직금은 2주간의 제주도 여행과 부트캠프 교육비로 탈탈 털린 상황. 😇 코드캠프 수료생의 신분으로 인턴을 시작하면 바로 통장에 급여가 찍히는 상태로 전환할 수 있었다. 감사하게도 참 잘하는 동기들 사이에서 인턴으로 선발되었고, 일단 근무하며 정규직 전환 여부를 결정하자.. 생각하고 인턴 생활에 돌입했다.
2. 더 공부하고 싶었기 때문
코드캠프 수료생 인턴인 CAI 제도는 정규직 전환을 보장한다. 총 두 달의 근무기간 중, 한 달이 지난 시점에 정규직 전환 여부를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이때 정규직 전환을 보류하면 한 달 더 인턴으로 근무하며 어떻게 할지 고민해볼 수 있다. 두 달이 종료된 시점에도 '정규직 전환을 원하지 않는다' 하면 좋은 경험으로 남기고 아름답게 bye bye 하는 것이고, 정규직 전환을 원하면 간단한 심사 과정을 거쳐 정규직 멘토로 근무를 시작하는 것이고.
인턴 생활을 하며 가장 먼저 투입된 업무는 수업 자료 보완 작업 착수였다. 코드캠프는 메인 강사를 맡고 계신 팀장님의 커리큘럼에 대한 욕심 덕(?)에 거의 매 기수마다 커리큘럼 개선이 이루어진다. 내가 수료한 5기와 퇴사 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10기의 커리큘럼에는 생각보다 꽤 많은 차이가 있다. 기본 골자는 같으나, 세부적인 실습 순서가 추가되거나 기초 개념에 해당하는 부분들에 대한 설명이 많이 더해졌다. 살이 붙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수업 자료 역시 돌려막기(ㅎㅎ)가 불가능하다. 매 기수마다 검수와 수정을 보태야하는 상황. 게다가 내가 입사했던 시기의 수업 자료는 실강 컨텐츠에 비해 빈약하기 그지 없었다.. (그래서 나도 수강생 때에는 코스에서 제공해주는 수업 자료를 보지 않고 내가 실시간 캡쳐하며 별도의 강의록을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온라인 부트캠프 런칭과 오프라인 캠프 수업자료 보완을 위해 총 40회차에 해당하는 수업 영상을 검수하며 수업 자료를 영상 기준으로 보완하고 업데이트하는 작업을 했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내 지식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지 느끼게 됐다. 수업을 두 번 들으면 새로운 것이 보였고, 세 번 들으면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깨닫게 되었으며, 그것을 자료로 다시 정리하며 내가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거시적인 관점에서 얼마나 작고 아기자기한 지식인지 느끼게 되었다.
인터넷에 도는 밈 중 이런 것이 있다. 수료 시점에는 우매함의 봉우리 꼭대기에 서있었다면 인턴으로 근무하며 절망의 계곡으로 주르륵 미끄러져 내렸다고도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멘토로 근무하며 조금 더 깊게 공부하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그런데 사실 딱히 절망적이지는 않았다. 내 지식의 아기자기함을 느끼며 오히려 조금 막막하기는 해도 더 즐거웠던 듯. 절망의 계곡을 막막함의 계곡 정도로 정정하고 싶다.)
3. 성장욕구가 강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동료들 & 든든한 시니어의 존재
원래부터 개발 관련 유튜브나 커뮤니티 글을 읽는 것을 좋아했던지라 개발자 중에서도 지식 공유 욕구가 유달리 강한 분들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직군은 타직군 대비 기술 관련 컨퍼런스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편이기도 하고. 그 중에서도 교육 직군 특성인지 코드캠프 멘토팀에도 그런 사람들이 꽤 많았다. 멘토팀에 질문을 싫어하거나 귀찮아하는 사람이 없었다는게 돌이켜보면 참 신기하다. 덕분에 열심히 물어보고 동료들과 토론하며 혼자 짱구만 굴렸으면 얻지 못했을 깨달음을 많이 얻었다. 대화를 통해 사고를 성장시키고 마침내 깨달음의 산마루를 넘어서는 그 감각을 오랜만에 다시 느꼈다.
하지만 주니어들끼리만 열심히 고민했으면 분명 요상한 샛길로 많이 빠졌을텐데.. 너무 삼천포로 빠지지는 않도록 가이드해주셨던 시니어 팀장님도 계셨고. 여러모로 참 공부하며 일하기에 좋은 환경이었다.
Q. 그렇다면 왜 멘토 일을 그만두기로 했는가?
1. 실제 사용자가 사용하는 프로덕트 개발에 참여하고 싶다.
본질이 교육업이다보니 실제 사용자에게 서비스하는 목적의 프로덕트는 개발할 수 없었다. 개발팀에 티오가 있었다면 그쪽으로 직무 변경 요청이라도 했겠지만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고, 필요에 의해서 중간중간 수업을 위한 작은 프로덕트는 개발했으나 오히려 그때문에 개발에 대한 갈망(!!)만 커져갔다.. 나는 개발자이고, 그렇기 때문에 개발이 하고 싶었다. 사실 이게 제일 큰 이유다.
2. 일이 익숙해지고 현재 상황에 안주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나는 고이는 것을 싫어한다. 내 본질이 나태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일이 익숙하고 쉽다 느껴지기 시작하면 단숨에 늘어지는 스스로의 태도를 늘 경계한다. 이건 사실 일 그 자체라기보다는 나의 환경과 태도의 문제였다. 회사가 잘못한 것도 아니다. 단지 때가 되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때까지 축적해온 내 삶의 경험을 돌아보았을 때 이제는 떠날때가 되었구나, 그런 직감이 들었을 뿐이다.
나는 조금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퇴사라는 이름의 코드캠프 졸업을 준비했다.
그래서 지금은?
교육 관련 서비스를 운영하는 스타트업에서 열심히 개발자로 일하는 중이다. 💪
아직 적응중이지만 얼레벌레 기존 프로덕트 리팩토링도 하고, 컴포넌트도 개발하고, 마침 딱 담당한 프로덕트 내부에서 한 도메인을 마무리하고 다른 도메인 작업으로 넘어가는 단계라 서비스의 아키텍쳐나 디자인 패턴을 논의하는 과정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 공부할 것이 많아 체력적으로는 조금 후달리지만, 그래도 즐겁다. 공부해야 할 목표가 명확하고 공부하는 과정도 재밌으니 즐거울 수 밖에.
나는 공부하는 것도 운동을 통해 신체의 근력을 기르는 과정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에게는 공부하는 근력과 생각하는 근력이 있어서, 꾸준히 올바른 방법으로 단련하지 않으면 금방 퇴화하고 만다. 반대로 꾸준히 공부하고 생각하는 연습을 하다 보면 사실 공부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도 않고 오히려 즐거워지는데, 나는 멘토 생활을 통해 그러한 근력을 얻었다는 생각이 든다.
마무리
새로운 시작. 이제까지처럼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고 스스로의 감정에 충실하게 살아가자. 내일 후회하지 않을 오늘을 꾸준히 쌓아가야지.
흘러흘러 이 글을 읽게 되었을 모든 분들도 행복한 2022 되었길 기원합니다.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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