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
보건교사 안은영에 대한 직접적인 스포일러는 최대한 거른다고 걸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접적인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음. 스포일러에 예민하다면 주의. (소설/드라마 둘 다)
사실 난 새로운 한국 픽션을 읽은 지 정말 오래되었다. 보건교사 안은영도 계속 관심이 많았던 소설인데, 한국 소설은 늘 시작만 하고 완독에 실패했던 아픈 기억 탓에 손이 안 갔다. 그러다가 2020년에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보.교.안 드라마가 제작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드라마 자체는 기대 이하였다. 예고편을 보고 너무 큰 기대를 품었기 때문일까? 전체적인 비주얼과 캐릭터 하나하나는 정말 매력적이었지만, 서사 전개가 급박한데다 설정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지 않아서 전반적인 개연성이 약하게 느껴졌다. 5화쯤 가서는 '재미있기는 한데, 왜 이렇게 되는거임?' 하는 생각이 내내 떠나지를 않았으니.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웃사이더 히어로 안은영은 사랑스럽고 안쓰러웠다. 그의 눈에만 보이는 젤리들의 세계는 흥미롭고 매력적이었다. 결과적으로 드라마 덕분에 이 책을 꼭 읽어봐야겠다 결심했으니 성공적인 영상화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애정작을 위해 부연설명을 덧붙이자면, 이 드라마는 지독하게 유니크하다. 이런 분위기의 드라마는 이전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기대 이하였다고 운을 띄웠음에도 불구하고 자석같이 이끌려서 재주행을 하게 만드는 마성의 드라마다. 나도 지금까지 세 번 이상 정주행했다. 이 드라마는 두 번 이상 봤을 때 매력적인 부분이 더 많이 보인다.)
그렇게 마음 먹은 것이 2020년.. 하지만 2020년과 2021년의 나는 번아웃에 찌들어 활자를 아예 읽지도 못했다. 퇴사 후 충분한 휴식기를 가지고 이제서야 활자 틈의 맥락을 읽어내는 머리를 굴릴 수 있게 되었다 싶었을 때, 간만의 연휴가 찾아왔다. 오랜만에 침대에 드러누워 이북 리더기를 들었다. 1년 넘게 서가에 자리잡고 있었던 터줏대감 '보건교사 안은영'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소설 원작을 읽고 드라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일광소독, 화수 등이 소설 원작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1차로 놀랐다. 원작은 조금 더 담백한 서사구조로 이루어져있었다. '아무도 모르게 남을 돕는 운명'으로 살아가고 있는 안은영이 겪는 에피소드 하나 하나에 초점이 맞추어져있다. 세계관에 대한 설명은 최소한으로만 한다. 대신 은영의 생각, 은영이 사는 세계, 은영이 겪어온 일 들에 대해 도란도란 이야기해준다.
꼭 죽은 사람들만 보는 건 아니었다. 산 사람들이 더 기분 나쁜 걸 많이 만들어 낸다. 예를 들면 이 학교에 떠다니는, 공기 가득한 나체의 환영들 같은 것 말이다. 아아, 사춘기 애들은 정말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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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 칼과 총에 은영 본인의 기운을 입히면 젤리 덩어리와 싸울 수 있었다. 비비탄 총은 하루에 스물두 발, 플라스틱 칼은 15분 정도 사용 가능하다. 이집트산 앙크 십자가와 터키의 이블 아이, 바티칸의 묵주와 부석사의 염주, 교토 신사의 건강 부적을 더하면 스물여덟 발, 19분까지 늘일 수 있다. 보건교사 안은영의 삶은 이토록 토테미즘적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이상한 것들'을 볼 수 있는 운명을 타고난 은영은 그런 사실을 지긋지긋해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때려치우고 도망가지 않는다. 통굽 실내화를 벗어던지고 스타킹 발로 복도를 달린다. 욕을 내뱉으면서도 학생들을 내버리고 도망가지 않는다. 아무도 다치지 않도록 속전속결로 젤리몬스터를 해치워버리겠다며 장난감 칼과 비비탄 총을 양 손에 단단히 쥔다.
책을 읽는 내내 은영은 참 좋은 어른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무도 몰래 학생들을 지키면서도 그 사실에 생색을 내거나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내심 억울함이나 피해의식을 느낄만도 한데, 그러지조차 않는다. '내가 호의를 베풀었으니 너는 당연히 내게 감사해야해' 따위의 생각을 하지 않는 어른이라니, 대한민국 학생들에게는 얼마나 보기 힘든 소중한 존재일까. 비록 M 고등학교의 학생들은 그러한 사실을 꿈에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은영이 마치 블록버스터 무비 속의 히어로처럼 멋지고 단단한 영웅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다. 쌍욕을 내뱉고, 다 때려치우고 싶다고 중얼거리면서도 그냥 달릴 뿐이다. 누군가가 '잘 버텼다'며 칭찬이라도 해주면 좋겠는데 그럴 리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역시 저 바깥에는 아무도 없다. 아무도 구해주러, 잘 버텼다고 칭찬해 주러 오지 않는다.
은영에게서 나는 나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다 때려치우고싶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자신이 믿는 '옳은 것'을 위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 친구들이 보였다. 거창하지 않더라도, 이렇게 하면 적어도 내 주변 사람들은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하며 밟아나가는 작은 단계들이 떠올랐다. 그러자 은영이 안쓰러워졌다. '사실 다 때려치우고싶다'고 엉엉 울며 주저앉았던 드라마의 은영이 떠올랐다.
어차피 언젠가는 지게 되어 있어요. 친절한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을 어떻게 계속 이겨요. 도무지 이기지 못하는 것까지 친절함에 포함되어 있으니까 괜찮아요. 져도 괜찮아요. 그게 이번이라도 괜찮아요. 도망칩시다. 안 되겠다 싶으면 도망칩시다. 나중에 다시 어떻게든 하면 될 거예요.
소설의 이 대목은 그런 세상의 많은 안은영들에게 보내는 메세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옆에서 '도망쳐도 괜찮다'고 이야기해주는 사람의 존재는 얼마나 소중한지. 세상의 많은 안은영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안 되겠다 싶으면 도망쳐도 괜찮아요. 좀 쉬고 다시 돌아옵시다. 나중에 다시 어떻게든 하면 될 거예요. 그러니 부디 지치지 말고 행복하게 살아요. 친절한 사람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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